♧...참한詩

대담한 치마 외 1편/변희수

김욱진 2016. 4. 20. 17:01

        대담한 치마

          변희수

 

 

우리 할머니 잘하던 말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안 아프다는 말

눈에 자꾸 밟힌다는 말

비유의 치마폭이 장난이 아니다

비유치고는 참 대담한 비유다

그 덕에 내가 지금 시를 쓰는지도 모르지만

스케일로 따지면 나는 겨우 미니스커트 한 장 정도

눈에 사람을 넣는다는 생각

눈에 한 사람을 넣고 걸어 다닌다는 생각

그런 치마, 나는 감당 못 한다

치마에도 급이 있고 관록이 있고

잘 못 두르면 넘어지고 자빠질게 뻔하다

비유란 치마를 훌러덩 뒤집어쓰듯

비유를 통째로 뛰어넘는 것

비유의 통을 아예 엎어버리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눈에 쏙 들어버리는 것

냉큼 한 눈에 반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잘 모른다

비유가 어디서 오는지

그것이 주체인지 객체인지

부려야할지 모셔야할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치마에서 멀다

눈에서도 멀고 마음에서도 멀고

비유 앞에 서면

아직도 그냥 그런 바지다

 

 

       껍질과 본질

 

 

쳐다도 안 보던 껍질에 더 좋은 게 많다고

온통 껍질 이야기다

껍질이 본질이라는 걸 뒤늦게사 안 사람들이

껍질이 붙은 밥을 먹고 껍질이 붙은 열매를 먹는다

이때껏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이

본질인줄 알고 나도 시퍼런 칼을 마구 휘둘렀다

연하고 보드라운 것에 집착했다

본질은 함부로 닿을 수 없는 곳에나 있다고 믿었다

공부할 때도 연애할 때도 시를 쓸 때도 그랬다

급하게 칼부터 밀어 넣었다

맨살로 덩그러니 나앉은 것 같은 날

허약한 내부를 달래주듯

껍질째 아작아작 사과를 먹는다

잘 씹히지 않는 본질을 야금야금 씹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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