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아침의 노래/변희수

김욱진 2016. 4. 22. 18:10

              아침의 노래

                   변희수

 

 

 

커튼콜처럼,

다시 무대가 열리고 있네, 검은 휘장 속에서 네가 걸어 나오고 있네

온갖으로 오고 있네, 온갖이라는 말이 폭죽처럼 쏟아져 내리네

많고 많은 온갖, 온갖은 사방팔방에서 오네, 온갖은 붉게붉게 물들면서 오네

온갖이 지문처럼 스미네, 번지네, 눈동자마다 온갖이 또록또록 새겨지고 있네

 

온갖이 나를 불러내고 있네

밤의 강보에 싸인 나를, 재촉하네, 손짓 하네

어둠의 탯줄이 화들짝 떨어지네, 배냇짓 같은 꿈들이 울음을 터트리네

신생아처럼 눈을 떠 보네, 두근두근 온갖이 내게로 오고 있네, 내가 온갖의 품에 안겨 있네, 가슴이 뛰네

 

시렁위에 얹힌 아침을 꺼내 신어보네, 태양이 붉은 머리칼을 땋아 내리네, 금방 구운 빵처럼 내가 부풀어 오르네, 나뭇잎이 살랑거리네, 어항 속 물고기들처럼 바쁘네, 시계가 뻐꾸기처럼 우네, 냄비가 정열적으로 끓어오르네, 자작자작 내가 졸아드네, 다시 당신을 연주하고 싶어지네, 온갖의 리듬, 온갖의 박자에 맞춰 나무처럼 춤추고 싶네, 풀처럼 웃고 싶네, 새처럼 떠들고 싶네, 동쪽에서 서쪽으로 주-욱,

밑줄을 그어 보네, 그러나

 

동이 틀 때는 문득

쓸쓸한 그림자,

홀로 잠입한 짐승처럼 내가 있네, 네가 있네

온갖의 밀림 속을 혼자 걸어가네

오래된 조명처럼 햇빛이 머리 위를 비추네

앙코르처럼 내가 불려나가네, 네가 있네

우리가 있네

                      (2016 문학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