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구름의 전지/김신용

김욱진 2016. 6. 19. 17:41

                   구름의 전지

                   김신용

 

 

비는, 구름의 전지剪枝

구름 스스로 가지치기한 구름의 가지들

 

저것 봐, 미꾸라지가 빗줄기를 타고 공중을 기어오르고 있네

비의 가지에 맺혀 있는 꽃눈 같네

빗방울의 앙증맞은 귓불 같기도 하네

누가 꽂아 주었을까, 비의 잘린 가지들을 한 움큼 땅의 꽃병에.

하지만 만지면 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빗줄기에 매달려

맨손으로 암벽을 타듯 기어오르는 것을 보면

비의 가지에 매달려 있는 꽃눈이

아, 어떡하면 입맞춤을 `뜨겁게` 할 수 있지?* 하는 눈빛 같네

그 입맞춤이 미꾸라지의 사다리이거나 의자였겠네

어쩌면 하늘 그네처럼 흔들리는 의자 같은 것

미꾸라지는 그 의자에 앉아 무얼 보고 싶었을까?

아슬아슬 사다리를 기어올라 무엇으로 이사하고 싶었을까?

그러나 비 그친 후, 무시로 마당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떨어져 있어

그것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의 꽃봉오리였다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눈빛 같을 때

비의 의자가, 그 흔들의자가 미꾸라지의 꽃이었을 것 같네

그렇게 수직의 빗줄기에 매달려 있는 순간이, 오직 그 순간이-

그래, 비는 구름의 전지剪枝

구름 스스로 가지치기를 한 구름의 가지들

 

* 루이스 세플베다의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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