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모기는 없다/김기택

김욱진 2016. 6. 19. 17:52

                         모기는 없다

                      김기택

 

 

내 손이 갑자기 내 뺨을 매몰차게 때린 것은

손바닥과 뺨 사이에 모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뺨따귀를 얼얼하게 맞고 나서야 모기가 없다는 걸 알았다.

 

모기 소리가 들리자마자 피가 다 가렵다.

핏줄을 긁으니 살갗이 벌겋게 부어오른다.

뇌 한가운데를 가는 철사 핏줄이 관통한다.

잠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계속 잘 것인지 묻는다.

어제 잤던 잠까지 모두 깨어난다.

 

수없이 모기를 죽였지만 모기 소리까지 죽이진 못했다.

모기 소리를 죽인다 해도

귓구멍 뿌리에 붙박여 있는 소리까지 죽이진 못할 것이다.

귓구멍 뿌리에 붙박인 소리를 죽인다 해도

이미 뇌수가 되어버린 소리까지 죽이진 못할 것이다.

냉장고 모터 도는 소리, 커피포트 물끓는 소리 속에

모기 소리들은 건재하다. 파리채와 모기약이 닿지 않는

모든 틈새에 안전하게 숨어 있다.

창밖에서 음산하게 아우성치는 바람 소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도

금방 피 빠는 주둥이와 피를 돌리는 날개가 된다.

모기는 내 몸속에서 수챗구멍과 침대 밑과 변기를 찾아내어

다시는 잡히지 않도록 숨는다.

 

몸통만 피를 터뜨리며 으깨지고

머리통에 박힌 소리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소리들은

이명(耳鳴)과 이식(耳識)이 닿는 곳은 어디든 새카맣게 붙어 있다.

어떤 두통도 바로 소리로 번역된다.

모기는 없다!

고 외치는 순간 모기 소리가 다시 울려댄다.

눈치 없는 손이 뺨과 종아리를 맹렬하게 긁어대기 시작한다.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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