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저녁 뉴스 외 4편/박주택

김욱진 2016. 6. 22. 21:04

                                                                   


                  저녁뉴스

                     박주택

 


  그는 말할 것이다. 아침에 허겁지겁 출근을 하고

  지각에 심장을 태우다가 그는 말할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점심의 부드러운 야채에 감정을 풀고

  괜찮다. 더욱더 많은 밥풀들이 일어선다.

  그는 굳은 어조를 풀고 책상 위의 책을 정리한다.

  저 진지한 표정의 축조물. 非詩的인 사무실.

  차가 전자음을 내며 부딪쳤다.

  그것들은 원래 정사각형이었다. 어젯밤.

  바퀴벌레가 탁자 틈을 빠져나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공격했다.

  오후는 점점 차가워져 갔다.

  꽉 찬 술집에 존재했을 담배꽁초들. 깨어나라. 닫힌, 더 많은.

  사무실을 빠져나온 그가 칼을 앞세운

  많은 족속들을 지나쳤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늦었다.

  그는 새로 사 입은 양복이 몸에 맞지 않았다.

  과연 오늘도 새로운 뉴스가 시작되었다.  

  거기다가 정국은 아주 불안했다.

  뉴스 속으로 걸어간다. 그는 뉴스를 진행했다.

 

                    시간의 동공  

 

이제 남은 것들은 자신으로 돌아가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만 바다를 그리워 한다

백사장을 뛰어가는 흰말 한 마리

아주 먼 곳으로부터 걸어온 별들이 그 위를 비추면

창백한 호흡을 멈춘 새들만이 나뭇가지에서 날개를 쉰다

꽃들이 어둠을 물리칠 때 스스럼없는

파도만이 욱신거림을 넘어간다

만리포 혹은 더 많은 높이에서 자신의 곡조를 힘없이

받아들이는 발자욱, 가는 핏줄 속으로 잦아드는

금잔화, 생이 길쭉길쭉하게 자라 있어

언제든 배반할 수 있는 시간의 동공들

때때로 우리들은 자신 안에 너무 많은 자신을 가두고

북적거리고 있는 자신 때문에 잠이 휘다니,

기억의 풍금 소리도 얇은 무늬의 떫은 목청도

저문 잔등에 서리는 소금기에 낯이 뜨겁다니,

갈기털을 휘날리며 백사장을 뛰어가는 흰말 한 마리

꽃들이 허리에서 긴 혁대를 끌어 바람의 등을 후려칠 때

그 숨결에 일어서는 자정의 달

곧이어 어디선가 제집을 찾아가는 개 한 마리

먼 곳으로부터 걸어온 별을 토하며

어스렁어스렁 떫은 잠 속을 걸어 들어간다

 

 -2005년 제20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시간의 육체에는 벌레가 산다

 

트럭 행상에게 오징어 10마리를 사서
내장을 빼내 다듬었다. 빼낸 내장을 복도의 쓰레기 봉투에
담아 한 켠에 치워 두었다. 이튿날 여름빛이
침묵하는 봉투 속으로 들어가 핏기 없는 육체와 섞이는 동안
오징어 내장들은 냄새로 항거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장마가 져 나는 지붕 위에 망각을 내리지 못하고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헛된 녹음에 방문을 걸고 있을 때
살 썩는 냄새만이 문틈을 타고 스며들고 있었다
복도에는 고약한 냄새만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방 안 가득 풍겨오는 냄새를 맡으며 냄새에도 어떤 갈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더 정확히는 더러운 쓰레기를 힘겹게 내다
버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과 싸우고 있었다

비로소 나는 복도의 문을 열었다
비가 멎고, 싸우고 난 뒤의 불안한 평온이
사방에 퍼져 있었다. 공기가 젖은 어깨를 말리고 있었다
발자국에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막 열쇠로 지옥 같은 문을 잠그고 돌아설 때쯤
핏기 없는 냄새가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무덤에서 냄새의 뿌리로 태어난 수많은 구더기들이
시간의 육체 속으로 흩어져 갔다

 

*제5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작* 





                        정육점


완벽한 육체를 이루었던 소는 칼에 찢겨

피에 젖은 갈고리에 걸려 있다, 가끔씩 날파리들이

핏물을 빨다 냉동고 위로 날아가버리면

몸에서 쫒겨나간 영혼만이 갈고리 주위를 맴돈다

바닥에 핏물을 떨어뜨리는 기억의 몸뚱이

마치 남은 말이라도 쥐어짜듯 팽팽한 얼룩들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거푸 숨을 몰아 내쉬며

한 방울의 핏빛 눈물을 짜낸다

진열대 속 자동 분쇄기에 가지런히 썰려 있는

살점들, 한 그루 시간의 붉은 잎사귀처럼 서로 몸을

포갠 채 지독한 적막 속에 끼어들 때

일생을 캐묻듯이 깃털들이 펄럭인다

게으른 책임을 두 눈 속에 퍼부었을 소

그러나 이제, 시간에게 상속받은 것이 얼룩뿐이라는 듯

붉은 燈을 바닥에 하나둘씩 켜놓는다  

 



           장수하늘소를 찾아서

 

                       
노인은 의자에 앉아 붐비는 전철을 기다린다
지팡이를 세우고 낭패한 세월의 익사한 꿈들을
발로 비벼본다, 그는 그래서 외롭다
모자를 집어들고 전철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그의 오랜 적막을 섞는다, 유령처럼 흐물거리는
그의 몸 속으로 삶의 잔뿌리가 뻗쳐온다
그는 비누 냄새가 나는 여자의 엉덩이에
몸을 붙인다, 발밑에 바위가 깨져 쌓이고
살을 뜯는 냄새를 풍길 때
독말즙 퍼지듯 무엇인가 그의 배꼽으로부터
짜르르 올라가며 그를, 생애의 중심에 세운다
그가, 시간의 즙을 짜 만든 붐벼오는 꿈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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