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봄날은 간다, 가/문인수

김욱진 2016. 7. 22. 16:30

                   봄날은 간다, 가

                               문인수


강원도 평창군 가리왕산 뒤쪽에 사촌동생 내외가 들어와 사는 전원주택이 있다. 이
집에, 남녀 종반 간 아홉 명이 한여름 더위를 피해 모였다. 누님 셋, 그리고 사촌형 내
외, 우리 내외, 다들 60대 중후반이거나 70대 중후반이다. 세 누님은 공교롭게도 아까
운 나이에 각기 부부 사별을 겪었다. 그래, 요즘 어디든 함께 잘 어울려 다닌다.


그런데, 이곳 평창에 온 첫날부터 내리 장대비가 쏟아진다. 비에 갇혀 아무 데도 가지 못
하고, 가지 못하니, 일흔아홉 저 누님 이제 또 슬슬, 간다. 물론, 젊은(?) 두 누님도 간다.
금세, 이구동성으로 아직 참 잘도 넘어가는 자매들, 예의 흘러간 유행가 「봄날은 간다」
를 부른다. 말하자면 누님들의 주제가다. 지난봄 포항 모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기다렸
다는 듯 형제들도 모두 따라 부른다. 3절까지, 끝까지 다 부르고, 처음부터 다시 부른다.
또 부르고, 또 부른다. 이미 간 봄, 간다 간다 불러일으키니 정말, 철 지나도 실은 봄날은
간다, 가. 가도 가도 비.

내가 불쑥 말했다. 봄날은 간다 3절 다음, 노인들을 위한 봄날을, 그 ‘제4절’을 쓰겠다고…… 썼다. 성원에 힘입어, 썼다.

밤 깊은 시간엔 창을 열고 하염없더라.
오늘도 저 혼자 기운 달아
기러기 앞서가는 만리 꿈길에
너를 만나 기뻐 웃고
너를 잃고 슬피 울던
등 굽은 그 적막에 봄날은 간다.

등 굽은 그 적막에 봄날은 간다, 가. 그리하여 이제 4절까지, 저 끝까지 가느라 여기 눌러앉은 뒷모습들. 그러나 봄날은 결코 제 몸 앉혀둔 채 마저 간 적 없어, 느린 곡조로 저마다 또 봄날은 간다, 가. 가느라, 지금 등이 더 굽는 중……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연들/윤이산  (0) 2016.07.24
졸부가 되어/임희구  (0) 2016.07.23
배꼽/문인수  (0) 2016.07.09
한뎃잠/문성해  (0) 2016.07.09
그늘/이상국  (0) 2016.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