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자화상/윤동주

김욱진 2016. 8. 10. 08:10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1939년 9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