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낳은 달걀처럼 한 마음이 생기려 할 때
변희수
흰자위에 동동 떠 있는
노른자 같은 마음아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는
흰자 같은 마음아
둘인 듯 하나인 듯 나누어지는 두 개의
마음이 마음을 품어 다시 한 마음이 생기려 할 때
무정한 마음이 다시 유정해지려 할 때
꼬꼬댁 꼬꼬댁 붐비는 나의 마음아
팔도 날개도 아닌 것이 돋아
잠시 마음이 마음대로 푸드덕 날아오르려고 할 때
마음아 홰를 치고 일어서는 마음아
구구구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는 어린 마음아
쏟아지는 목청에 겨워 멀리서도 꼬끼오 우는 마음아
낳지도 않은 마음들이
오지도 않은 새벽을 향해 한 발 두 발 갸웃갸웃
콕콕 쪼아대고 싶은 정곡아
검은 손
석탄박물관 벽에 초상화처럼 걸린 광부의 검은 손
지문 따라 스며든 검은 빛이 등고선처럼 깊고 올곧게 파여있다
검은 선들을 나란히 연결해보면
완연하게 드러날 어떤 생의 경사와 굴곡들
더듬더듬 낯선 광맥을 따라가다
어둠 깊숙이 손을 밀어 넣었을 때 문득 눈앞을 가로막는
그 검은 것도 일종의 빛이라면 빛
그런 것들은 모두 연소를 담보로 발굴되지만
티눈으로 옹박힌 검은빛
그런 캄캄한 것들은 누가 채굴해가나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손
매장량이 빤히 보이는 빈 손
문경까지 와서야 남몰래 슬쩍 잡아보는
두 손
먼 길을 온 후에야 새삼
검은빛에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걸
알고 가는 사람처럼
『다시올』 2016.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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