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칼날/장옥관

김욱진 2016. 8. 13. 17:49

                   칼날

                               장옥관

 

 

 

  칼날이 무뎌 햇빛에 비춰보니

  주름살지듯 잡힌 자잘한 흠집투성이

  무, 파만 써는 부엌칼인데 왜 날이 나가는 걸까

  면도날 입에 넣고 씹는 깻잎머리 소녀처럼 배추, 당근이 우물우물 쇠 씹

는  취미 가진 건 아닐 텐데

 

  흰 종이에 자주 손가락 베이는 나로선

  칼이 풀을 베는 게 아니라

  이슬이 풀잎을 벤다는 걸 믿을 수밖에 없고

 

  도마가 칼날을 물어뜯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둥이 구름 속에서 우는 소릴 듣지 못한 귀머거리거나 돌멩이 속에서 새

소리를 꺼내보지 못한 사람들일 터

 

  칼의 날이 빠지는 건,

  수십 년 몸 섞은 내연의 관계에도 가차 없이 쑤셔 박히는 게 칼이라 해도

때로는 숫돌에 몸 맡기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기에 숫돌도 그 마음 알고 순순히

  제 부드러운 살점을 떼어

  칼날에게 먹히는 것 아니겠는가


       ―계간문학선, 201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