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걸음이 벌레보다 더 느리다
임영석
어린 살구나무를 심어 살구 하나가 열리기까지 3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도 벌레가 다 먹고 내 차지가 되지 않았다
살구 하나 내 것으로 만들려면 이제는 벌레들과 싸워야한다
나보다 벌레가 살구나무에 바짝 붙어사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냥 벌레가 먹고 남은 살구를 기다릴 수밖에,
게으른 내가 어찌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벌레들을 이길 수 있겠는가
내 걸음이 벌레보다 늦은 걸 어떻게 하겠는가.
잡아도, 잡아도 또 다른 놈이 나보다 더 빠르게 와 있는 걸
2012년 좌도시 스물일곱 번째 시집 『소걸음으로 웃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