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을(乙)'의 비애
정대구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하루 종일 구겨진 얼굴을 그냥 달고 들어갈 수는 없지
말끔히 지우고 밝은 표정을 달고 들어가
마누라와 아이들의 기를 살리고 그들에 의해 다시 구겨지기 위해서라도
꿀꺽, 울음을 가장(假藏)한 가장(假裝)의 달인 우리들의 가장(家長)
가장인지도 모르는 식구들에게 언제나 당당한 가장
안에서 마누라에게 자식들에게
부대낄 대로 부대껴도
밝는 날 아침 아무렇지 않게 새 얼굴을 달고 나가
또다시 당할 만치 당하고 들어와
꿀꺽 꿀꺽 울음을 삼키며 웃는
가장의 명수 당당한 가장 슬픈,
- 2013년 <유심> 11월호
정대구 시인 1972년 <대한일보> 등단, 시집<양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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