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가을 부근/정일근

김욱진 2016. 10. 13. 10:24

               가을 부근

                         정일근  

 

여름내 열어놓은 뒤란 창문을 닫으려니

열린 창틀에 거미 한 마리 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미에게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호박잎이 무성한

뒤뜰 곁이 명당이었나 봅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에 더위가 묻어나는 요즘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나, 새 집을 마련하는 일도

사람이나 거미나 힘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거미를 쫓아내고 창문을 닫으려다 그냥 돌아서고 맙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을 보낸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듯

미물에게도 가을은 예감으로 찾아와

저도 맞는 거처를 찾아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시집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시와시학사, 2001)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금의 낭자한 발자국들/문인수  (0) 2016.10.30
그랬으면 좋겠네/이시하  (0) 2016.10.13
에세이/김용택  (0) 2016.10.13
달의 수레를 끌고 간/장하빈  (0) 2016.10.05
할머니와 아기염소/정성수  (0) 2016.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