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나는 바퀴를 보면 안 굴리고 싶어진다 /김기택

김욱진 2010. 7. 4. 07:23

나는 바퀴를 보면 안 굴리고 싶어진다 

                                                                          김기택

  

 

 

 

 

하루 종일 내가 한 일은

바퀴 굴린 일

할 일 없는 무거운 엉덩이를 올려놓고

무늬가 다 닳도록 바퀴나 굴린 일

 

미안하다

무슨 대단한 일이나 있는 줄 알고

시키는 대로 좆 빠지게 돈 바퀴들에게

뜨겁고 빵빵한 바퀴 속에서

터지지도 못하고 무작정 돈 둥근 공기들에게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문학행사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꽃나무들

늘 뚫려 있어서 심심한 구멍들을 채우느라

괜히 비운 밥그릇과 술잔들

 

이토록 먼 곳까지 왔으니

시인으로서 뭔가는 남겨야 하겠기에

문학적인 체취가 은은하게 묻어나는 사인처럼

정성껏 남기고 온 똥오줌

 

미안하다

배부른 엉덩이 밑에서

온몸으로 필사적으로 뺑뺑이 돈 바퀴들에게

 

 

- <유심> 2010.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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