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는 손님처럼/ 문성해
어느새 파장 분위기로 술렁거리는 장미원에
올해도 어김없이 장미가 다니고 가신다
한번 다니러 오면 한 생애가 져버리는 우리네처럼
이승이란 있는 것 다 털고 가야 하는 곳이라서
꽃술과 꽃잎을 다 털리고 가는 저 꽃들
그래도 말똥구리로 굴러도 이승이 좋은 곳이라고
빨간 입술의 늙은 여자들이 양산을 들고 그 사이로 걸어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다니러 오셨는가
목책을 붙잡고 말라빠진 덩굴장미 한 송이 안간힘으로 피어있다
다시 한 생애가 오기까지
다시 이 불가해한 시간대에 얼굴을 달고 태어나기까지는
영겁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다니고 가는 것들로 북적대는 장미원에는
함부로 늙어가는 꽃들
함부로 늙어가는 여자들이 지천에 가득하고
젊은 남자가 서너 살은 되어 보이는 딸아이를 꽃 속에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어서어서 커야지 할 새도 없이
봄여름을 알 수 없는 계절이
함부로 뭉쳐져서 빠르게 몰려오고 있다
- 시집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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