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가을 저녁의 말/장석남

김욱진 2010. 9. 28. 08:21

 

 

 가을 저녁의 말/장석남

 

 

나뭇잎은 물든다 나뭇잎은 왜 떨어질까?

군불 때며 돌아보니 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꾸물대는 닭들

 

윽박질린 달이여

 

달이 떠서 어느 집을 쳐부수는 것을 보았다

주소를 적어 접시에 담아 선반에 올려놓고

 

불을 때고 등을 지지고

배를 지지고 걸게 혼잣말하며

어둠을 지졌다

 

장마 때 쌓은 국방색 모래자루들

우두커니 삭고

모래는 두리번대며 흘러나온다

모래여

모래여

게으른 평화여

 

말벌들 잉잉대던 유리창에 낮은 자고

대신 뭇 별자리들 잉잉대는데

 

횃대에서 푸드덕이다 떨어지는 닭,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나뭇잎은 물든다

 

- 2010년 제10회 미당문학상 수상작

.................................................................................................................................................

 

 주초에 발표된 제10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이다. 모두 10명의 시인 10편의 후보작을 놓고 벌인 모국어의 경연에서 가장 격조 높은 서정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며 심사위원 합의로 선정되었다. 늦가을 산골을 배경으로 스산한 심정을 안정감 있게 표현했다는 평가인데 한편으론 너무 점잔 빼고 노숙한 척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일부의 경계도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대표집필을 맡은 남진우의 심사평 일부이다. “이 작품은 그리 길지 않은 길이에 한국 현대시의 여러 뛰어난 선례에 대한 참조를 보여주고 있다. ‘윽박질린 달이여’에서 박용래를, ‘모래여 모래여 게으른 평화여’에서 김수영을, ‘유리창에 뭇 별자리들 잉잉대는데’에서 정지용을 연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시인은 말을 부리고 다루는데 능숙한 천부적 자질을 타고난 시인 미당의 언어 감각에 제일 많이 다가간 시인이기도 하다. 심지어 早老를 가장한 어투와 발상, 능청까지 그는 미당의 어떤 부분에 근접해 있다”

 

 하지만 수상작품에 대한 띄어난 묘사와 감성을 모두 수긍한다 하더라도 그동안 시인이 쌓아올린 작품세계를 무시하고 달랑 이 한 편으로 문학상이 결정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가 마치 좋은 시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인양 시적 출세를 갈망하는 많은 시인들에 의해 한동안 추종될 것이다. 비슷한 색상과 유사한 문법, 소재의 답습, 운율과 시어의 모방, 수미상관의 화법까지 은밀하게 가까이 다가가려할 것이다.

 

 필립시드니가 그랬던가. 아무리 '시는 모방의 기술'이라지만 완전 초짜가 아닌 이상 시의 본뜨기는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이 시에서 박용래와 김수영과 정지용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누가 봐도 아류로 밖에 보이지 않는 시들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재미가 적다. 뽕잎을 먹고 비단실을 내뿜는 누에가 아니라 비단실을 먹고 평범한 똥을 싸는 시인이 양산되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부의 깊이/나희덕  (0) 2010.10.01
나팔꽃/송수권  (0) 2010.10.01
평생/송재학  (0) 2010.09.20
한가위엔 연어가 된다/이승복  (0) 2010.09.20
폭설/공광규  (0) 2010.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