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의 깊이
나희덕
마치 잠이 든 것 같았다 너는
확신에 찬 꿈을 꾸면서
어디 먼 곳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네 눈과 뺨과 팔과 다리를 쓸어내리니
손 끝을 파고드는 냉기가
싸늘한 돌멩이를 만지는 것 같았다
피부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네 삶을 봉인한 자루 속에서
다른 세계의 빙산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 침묵의 벽을 탕 탕 쳐보아도
단 한 마디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을 흘려보내도
단 한 줄기 물도 녹아내리지 않았다
나사로여, 일어나 걸어라, 아무리 소리쳐도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를 만진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희노애락으로 출렁거리는 표면,
오직 너의 잠든 얼굴만이 잔잔하였다
아, 피부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유심> 2010.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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