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피부의 깊이/나희덕

김욱진 2010. 10. 1. 16:35

   피부의 깊이

         나희덕

 

 

 

마치 잠이 든 것 같았다 너는

확신에 찬 꿈을 꾸면서

어디 먼 곳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네 눈과 뺨과 팔과 다리를 쓸어내리니

손 끝을 파고드는 냉기가

싸늘한 돌멩이를 만지는 것 같았다

 

피부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네 삶을 봉인한 자루 속에서

다른 세계의 빙산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 침묵의 벽을 탕 탕 쳐보아도

단 한 마디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을 흘려보내도

단 한 줄기 물도 녹아내리지 않았다

나사로여, 일어나 걸어라, 아무리 소리쳐도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를 만진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희노애락으로 출렁거리는 표면,

오직 너의 잠든 얼굴만이 잔잔하였다

 

아, 피부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유심> 2010.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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