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 대하여
이하석
자판기 커피 뽑는 것도 시비꺼리가 될
수 있는지, 종이컵 속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
어내면 "왜 거품을 걷어내느냐?" 고 묻는 이
가 있다. 나는 "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하여" 라
고 대답한다. 마음에 없는 말 일수 있다. 인스
턴트 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고 물
으면, 대단치 않는 깊이에도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해준다. 모두 얕다. 기실 따뜻하다는 이유만
으로 그 대단찮은 깊이까지 사랑한다 해도, 커피
는 어두워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해
서 내가 마실 어둠의 깊이를 얕볼 수 없다. 싸고
만만한 커피지만, 내 손이 받쳐 든 보이지않는
그 깊이를 은밀하게 캐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
걸 누가 쉬이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2010 현대문학 10월호)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박재삼 (0) | 2010.10.14 |
---|---|
고드름/박정원 (0) | 2010.10.12 |
지상의 방 한 칸/김사인 (0) | 2010.10.08 |
피부의 깊이/나희덕 (0) | 2010.10.01 |
나팔꽃/송수권 (0) | 2010.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