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되는 점들
변희수
가령, 이런 점들은 언제나 안심이 된다
세계는 하나의 점으로 시작되고 하나하나의 점으로
점묘법을 쓰는 화가들처럼
나는 수없이 찍힌다
빨강옆에,
노랑옆에,
검정옆에,
섞이고 물든다
묽어진다
파랑새였던
나의 파랑이
점점 더 희미해져간다
파랑의 기억들로 부터
당신의 눈동자가 점처럼 점점 더 멀어져갈 때
점점 더 또렸해지는 점들
우리는 언제부터 완성되고 있었을까
나는 여기서
당신은 거기서
우리는 언제나
몇 걸음쯤 더 떨어져서
무수히 라는 말이
우리의
빈틈을 빼곡히 메워주었다
우리가 우리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가까워질 때
이런 점들은 언제나 의심되는
점들이지만
반복적으로,
점진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접시꽃을 감상할 때
볕이 뜨거운 날을 택해 화원에 갔다
접시꽃이 가득 핀 꽃밭
접시꽃을 보려면 적어도 접시보단 더 개방적이어야 한다
접시들은 활짝 접시들을 형형색색
접시들은 새것처럼 아름답지만 이 꽃밭에는 내가 버린 접시들도 있다
조금 금이 가고 이가 빠졌을 뿐인데
접시의 미신과 식탁의 문명을 함께 사랑한 여자처럼
무슨 근거로 나는 자주 접시를 버렸을까
손끝에 맺힌 생혈이 꽃처럼 떨어지거나 잠시 붉었을 뿐인데
우리들의 식탁엔 언제나 접시들이 놓여있다
접시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활짝 웃던 시간들 동그란 웃음들
활짝이란 말을 들으면 화들짝 놀라지만
꽃이라는 말을 편편하게 눌러놓은 것처럼
접시꽃을 감상할 때
접시 쪽으로 마음이 살짝 기울어질 때
우리가 처음 샀던 접시처럼
깨질듯 말듯 간당간당한 웃음을 피워내고 있는 붉은 꽃잎들
염천에 불도장처럼 찍혀있다
-시와반시 가을호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미/송찬호 (0) | 2018.01.30 |
---|---|
다황을 긋다/이무열 (0) | 2018.01.29 |
어떤 별리/장하빈 (0) | 2018.01.24 |
꼭지/문인수 (0) | 2018.01.23 |
적소단장謫所短章ㅡ골방에서/심강우 (0) | 2018.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