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그러하게
김해자
밤새 비 내린 아침
옥수수 거친 밑둥마다
애기 손톱만한 싹이 돋아났다
지가 잡초인 줄도 모르고
금세 뽑혀질 지도 모르고
어쩌자고 막무가내로 얼굴 내밀었나
밤새 잠도 안 자고 안간힘을 썼겠지
온몸 푸른 심줄 투성이 저것들
저 징그러운 것들 생각하니 눈물난다
누구 하나 건드리지 않고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솟아오른 저 작은 생 앞에
내 시끌벅적한 생애는 얼마나 가짜인가 엄살투성인가
내가 인간으로 불리기 전에도 내 잠시 왔다 가는
이승의 시간 이후에도 그저 그러하게
솟았다 스러져 갈 뿐인 네 앞에
너의 부지런한 침묵 앞에 이 순간
무릎 꿇어도 되겠는가.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괴물/최영미 (0) | 2018.03.25 |
---|---|
폭설/오탁번 (0) | 2018.03.17 |
꽃은 자전거를 타고/최문자 (0) | 2018.02.15 |
[스크랩] 최영미시인 시모음 (0) | 2018.02.11 |
상인일기/김연대 (0) | 2018.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