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 같은 사랑 얘기
평생 절간 드나드는 거 밖에 모르고 살아온 노보살 한 분
비슬산 수도암 백중 기도 마치고 내려오다
계곡 한 모롱이 담 카페 모시고 갔더니
피서 온 사람들처럼 빨대를 입에 물고
아메리카노에다 빵 조각 적셔 먹으며
모처럼 소풍을 나오니 살 것만 같다 그러신다
청춘과부 멍에 걸머지고
비알-밭 같은 자식 농사 일궈온 노보살
커피 한 잔에 취하셨는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사랑 얘기 술술 풀어놓는다
얼마 전 건넛마을 혼자 사는 동갑내기 영감
어디서 막걸리 한 사발 걸쭉하게 마시고 불쑥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자 하길래
대뜸 이 나에 쓸 만한 물건이 어디 있냐고
내놓을 거 있거든 다 내놔봐라 그랬더니
그 영감 질겁하고 돌아가
그 담 날 현풍 장 난전에서 만나
아무 일도 없는 듯 잔치국수 한 그릇 사주더라
지나가는 달빛에 어렴풋 가려진 선문답 같은 구순 노모 얘기
돌고 도는 물레방아에 친친 감겨 돌았다
-2018 달성문학 10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