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에서 만난 형
두 하늘을 모시고 사는 형이 있었다
파란 새벽하늘 쳐다보고 갱 속으로 들어가
숯검댕이 하늘나라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형, 만나러 갔다
늦가을 해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갑반 일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검댕이들은 다
나의 형 같아 보였다, 보릿고개 시절
온몸에 깜부기 칠하고 나를 폭삭 속여먹었던 형
엄마한테 검정 고무신 사달라고 떼쓰던 그 형아
오늘은 아무런 말이 없다
동생 공부시키겠다고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막장까지 떠밀려온 형들의 눈빛은 모도
지금, 여기, 나는 없었다
막장 한 모퉁이 꼬부리고 앉아
시시만큼 싸온 점심 도시락을 까먹으면서도
은성 주포집 빈대떡 두루치기 한 접시 시켜놓고
술잔을 부딪치며 먼저 떠난 이의 이름 되뇌면서도
갱 입구 쓸쓸히 서있는 동상을 바라보면서도
시커먼 석탄 가루 뒤집어 쓴 형의 마음은 늘 새카맣게 타들었을 터
어렵사리 대학 간 동생 고시 패스만 하면
팔자가 늘어질 끼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형
석 달에 한번쯤 광산 이발관 들러 밑도리도 하고
사택 공동 목욕탕에서만 항상 목간을 하던 형
간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은성 식육점 돼지고기 두어 근
새마을 구판장 소고기라면 대여섯 봉다리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던 형
목소리가 고대로 살아남아 있는 문경 석탄박물관
단칸방 사택에는 아직도 라면땅 사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나의 조카 질녀들은 딱지치기하고 있다
연탄불 피워놓은 따뜻한 방에서 내가 편히 잠들었을 그 시간
형은 월남막장에서 석탄을 캐고 있었다
-2018 구곡원림 톺아보기(대구문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