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막장에서 만난 형

김욱진 2019. 1. 13. 09:11

       막장에서 만난 형

 

두 하늘을 모시고 사는 형이 있었다

파란 새벽하늘 쳐다보고 갱 속으로 들어가

숯검댕이 하늘나라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형, 만나러 갔다

늦가을 해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갑반 일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검댕이들은 다

나의 형 같아 보였다, 보릿고개 시절 

온몸에 깜부기 칠하고 나를 폭삭 속여먹었던 형 

엄마한테 검정 고무신 사달라고 떼쓰던 그 형아

오늘은 아무런 말이 없다

동생 공부시키겠다고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막장까지 떠밀려온 형들의 눈빛은 모도

지금, 여기, 나는 없었다

막장 한 모퉁이 꼬부리고 앉아

시시만큼 싸온 점심 도시락을 까먹으면서도

은성 주포 빈대떡 두루치기 한 접시 시켜놓고 

술잔을 부딪치며 먼저 떠난 이의 이름 되뇌면서도

갱 입구 쓸쓸히 서있는 동상을 바라보면서도

시커먼 석탄 가루 뒤집어 쓴 형의 마음은 늘 새카맣게 타들었을 터 

어렵사리 대학 간 동생 고시 패스만 하면

팔자가 늘어질 끼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형 

석 달에 한번쯤 광산 이발관 들러 밑도리도 하고

사택 공동 목욕탕에서만 항상 목간을 하던 형 

간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은성 식육점 돼지고기 두어 근   

새마을 구판장 소고기라면 대여섯 봉다리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던 

목소리가 고대로 살아남아 있는 문경 석탄박물관

단칸방 사택에는 아직도 라면땅 사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나의 조카 질녀들은 딱지치기하고 있다

연탄불 피워놓은 따뜻한 방에서 내가 편히 잠들었을 그 시간

형은 월남막장에서 석탄을 캐고 있었다 


         -2018 구곡원림 톺아보기(대구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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