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김현옥
거둬들인 인연들 키질하고 보니
하아 알곡 몇 안 되더군
쭉정이들 미련 없이 날려버리고
그 알곡으로 가난한 가슴 연명해 왔지만
그나마 곯아 죽지 않을 정도니
인연 농사 영 망친 건 아니더군
사십 몇 년 오래 농사지었어도
아직도 풍년 들려면 한참 멀었더군
묵은 된장처럼 묵은 김치처럼
나를 푸욱 침묵의 항아리에다 묻어놓고
항아리 안에서 발효된 사랑으로 알맞게 삭혀지면
어떤 인연이라도 나를 맛있게 드시겠지
가슴 가득 실한 인연들 열리겠지
아 지금은 겨울, 나는 항아리 뚜껑을 덮겠네
봄이 나를 열어줄 때까지
인연들이여, 잠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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