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맛
박남희
노을 속에서 저녁을 더듬어 찾았다 저녁이 없었다 그 대신 어둑한 고양이 같은 걱정이 웅크리고 있었다 걱정이 저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면 어둠이 뻑뻑한데 왠지 노을은 달콤했다 신기한 저녁의 맛이라고 했다 노을이 어둠에 쏟아놓은 것들이 이렇게 달콤한 맛을 내는 줄은 몰랐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노을 냄새를 아는 고양이라고 했다 노을 주변에는 어둠이 엷어져 있었다 고양이의 짓이라고 했다 어둠을 훔쳐 먹는 일이 노을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 고양이는 아는지 냄새는 밤마다 분주했다
노을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저녁의 맛을 누설하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동안 아무도 저녁의 맛을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므로 노을 근처에서 저물 줄만 알았다 저물면서 그림자가 길어질 때면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는 노을 속에서 쥐 대신 저녁을 뒤적이고 있었다 저녁은 쥐처럼 숨을 구멍이 없다 구멍이 누설한 비밀의 맛, 고양이의 탈을 쓴 걱정은 그 맛을 너무 잘 안다
(2019 시산맥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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