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이백 / 이정록

김욱진 2019. 10. 27. 08:59

이백

이정록


원고지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사학년  때다. 

"뭘 써도 좋다. 원고지 다섯 장만 채워 와라!" 

다락방에 올라 두근두근, 처음으로 원고지라는 걸 

펼쳐보니 (10 ×20) 이라 쓰여 있는 게 아닌가? 

그럼 답은 200! 구구단을 뗀 지 두어 달, 뭐든

곱하던 때인지라 원고지 칸마다 200이란 숫자를 

가득 써냈다 너 같은 놈은 교사생활 삼십년,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 교문 밖 초롱산 꼭대기까지 

소문이 쫙  퍼졌다 그로부터 십오년, 나는 작가가  되었다 

지금도 글이 콱 막힐 때마다, 그  붉은 우물에서 

두레박을 타고 이백이 솟아오른다 그때 나는, 

이백과 같은 길을 걸어갈 거라는 막연한 운명을

또박또박 적어넣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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