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쪽 풍경
이하석
1
폐차장 뒷길, 석양은 내던져진 유리 조각
속에서 부서지고, 풀들은 유리를 통해 살기를 느낀다
밤이 오고 공기 중에 떠도는 물방울들
차가운 쇠 표면에 엉겨 반짝인다,
어둠속으로 투명한 속을 열어놓으며
일부는 제 무게에 못 이겨 흘러내리고
흙속에 스며들어 풀뿌리에 닿는다
붉은 녹과 함께 흥건한 녹물이 되어
일부는 어둠속으로 증발해 버린다
땅속에 깃든 쇠조각들 풀뿌리의 길을 막고,
어느덧 풀뿌리에 엉겨 혼곤해진다
신문지 위 몇 개의 사건들을 덮는 풀. 쇠의 곁을 돌아서
아늑하게, 차차 완강하게 쇠를 잠재우며
풀들은 또 다른 이슬의 반짝임 쪽으로 뻗어나간다
2
먼지 속에서 뒤척이며 찢어진 신문에서 떨어져 나와
푸른 여자 먼지 일으키며 날아갔다.
비고 우그러지고 벗겨진 채 햇빛에도 바랜 채
뒹굴던 깡통들 뻔뻔하게 흙속에 처박히고,
풀들 어쩌다 깡통 속에 다리 뻗쳐
부르튼 다리로 깡통들 뚫어버린다.
나비 올 때쯤 기약도 없이 꽃피는 민들레, 저 혼자
씨앗 흩이고 쓰러진 후, 그 곁에 내던져진 채
몇 개의 사건들 기억해내려고 심각해진 남자들의
찢어진 얼굴들. 그 얼굴들만 휴지로 빠져 나와
바람에 사라지는 것들 속에 저절로 섞이며,
혹은 모든 사건들 속에서 평온하게
따로 미끄러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