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뒤쪽 풍경 / 이하석

김욱진 2019. 11. 3. 09:25

뒤쪽 풍경

이하석


​1

폐차장 뒷길, 석양은 내던져진 유리 조각

속에서 부서지고, 풀들은 유리를 통해 살기를 느낀다

밤이 오고 공기 중에 떠도는 물방울들

차가운 쇠 표면에 엉겨 반짝인다,

어둠속으로 투명한 속을 열어놓으며

일부는 제 무게에 못 이겨 흘러내리고

흙속에 스며들어 풀뿌리에 닿는다

붉은 녹과 함께 흥건한 녹물이 되어

일부는 어둠속으로 증발해 버린다

땅속에 깃든 쇠조각들 풀뿌리의 길을 막고,

어느덧 풀뿌리에 엉겨 혼곤해진다

신문지 위 몇 개의 사건들을 덮는 풀. 쇠의 곁을 돌아서

아늑하게, 차차 완강하게 쇠를 잠재우며

풀들은 또 다른 이슬의 반짝임 쪽으로 뻗어나간다

2​

먼지 속에서 뒤척이며 찢어진 신문에서 떨어져 나와

푸른 여자 먼지 일으키며 날아갔다.

비고 우그러지고 벗겨진 채 햇빛에도 바랜 채

뒹굴던 깡통들 뻔뻔하게 흙속에 처박히고,

풀들 어쩌다 깡통 속에 다리 뻗쳐

부르튼 다리로 깡통들 뚫어버린다.

나비 올 때쯤 기약도 없이 꽃피는 민들레, 저 혼자

씨앗 흩이고 쓰러진 후, 그 곁에 내던져진 채

몇 개의 사건들 기억해내려고 심각해진 남자들의

찢어진 얼굴들. 그 얼굴들만 휴지로 빠져 나와

바람에 사라지는 것들 속에 저절로 섞이며,

혹은 모든 사건들 속에서 평온하게

따로 미끄러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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