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옥신각신 웃는 연습*
사윤수
어제같이 딱풀을 쓰고 어디 두었는데
오늘 아무리 찾아도 없네
어디 뒀나 어디 숨었나
풀아 풀아, 제발 제자리 좀 붙어있어라
찾다가 말다가 포기하다가
저녁에야 설핏 보니 늘 두던 곳
머그 컵 속에 얌전히 풀이 담겨 있네
너, 말도 없이 언제 거기 들어갔니?
수 일 전에 스킨 화장 솜을 주문했네
만 원짜리 주문에 택배비 2500원,
그런데 주소지가 오류 나서 옛집으로 택배가 간 모양이네
내 잘못 반, 너희들 잘못 반인데
화장 솜이 옛집에서 본사로 돌아가는 택배비 2500원
현재 집으로 다시 오는 택배비 2500원
만 원짜리 하나 사는데 택배비 도합 7500원,
입에서 욕 나오겠니 안 나오겠니
박성우 시집을 주문해서 『웃는 연습』이 왔네
「행복한 옥신각신」이라는 시의 첫 행,
“집이 누구 지시오? 집이 누구 지시오?”
이 뜻을 몰라 몇 번이나 들여다보다가
아, 그제야 알았네
대문이나 마당에서 ‘집에 누구 계세요?’ 라고 불러보는 뜻이네
각주도 없이, 경상도 출신 아니면 해석하기 어려워요
촌 출신인 나는 2개 국어를 아네
표준말도 알고 촌말도 아니까
저녁에 동네 마트에 갔는데
배달사고로 애써 구했던, 돌고 돌아 집에 왔던
그 화장 솜을 그곳에서도 파네
으으, 이럴 때 또 욕 나오는 거 아니니? 아니면
뉴호라이즌스호가 총알보다 10배 빠른 시속 65,000km로
9년 동안 날아서 명왕성에 꽃 배달 갔는데
다시 보니 주소가 잘못 적혔더라는 것보다 낫다며
삼복염천 나 홀로 오호호호 웃어야겠니?
* 박성우 시집 차용
- <<문파>>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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