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사막의 풍화작용 / 김기덕

김욱진 2020. 3. 28. 20:58

사막의 풍화작용

김 기 덕

  

모래 속에 박힌 해골이 입 벌리고 웃는다.

눈동자가 사라진 퀭한 구멍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구멍엔 블랙홀이 담겨있고,

나는 혼돈 속으로 빨려든다.

그가 누렸던 천만의 풍경과 빛깔들은 어둠이 되었다.

태양빛 입술과 볼의 노을이 지워지고

오뚝하던 콧대마저 사라진 구멍 속으로

모래바람만이 드나든다.

감각을 다 지우고 남은 해골 하나

밤을 닦아내며 하얗게 탈색해 간다.

모래 속에서 반 쯤 머리 들고 바라보는 세상에 미련이 남았는지

징상한 이빨로 웃는다.

감각 속에 울고 웃다가 무감각에 빠져드는 사막에서

해골도 말없이 누워있다.

뼈들이 모래가 되고,

모래가 다시 미립자가 되고나면

나는 또 누구와 만나 새로운 세상을 살까.

분해와 결합의 반복을 이루며 나와 해골은 하나의 시간 속에 있다.

사막에 누운 해골과 사막을 걷는 해골이 마주보고 웃는다.

내 몸에서 모래들이 쏟아진다.

지루한 시간의 반복,

내가 모래 속에 눕고 해골이 사막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