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너머라는 말은
박지웅
어깨너머라는 말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아무 힘 들이지않고 문질러보는 어깨너머라는 말
누구도 쫓아내지 않고 쫓겨나지 않는 아주 넓은 말
매달리지도 붙들지도 않고 그저 끔벅끔벅 앉아 있다가
훌훌 날아가도 누구 하나 알지 못하는 깃털 같은 말
먼먼 구름의 어깨너머 있는 달마냥 은근한 말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은은한가
봄이 흰 눈썹으로 벚나무 어깨에 앉아 있는 말
유모차를 보드랍게 한 걸음 한 걸음
저승에 내려놓는 노인 걸음만치 느린 말
앞선 개울물 어깨너머 뒤따라 흐르는 물결의 말
풀들이 바람 따라 서로 어깨너머 춤추듯
편하게 섬기다가 때로 하품처럼 떠나면 그 뿐인 말
들이닥칠 일도 매섭게 마주칠 일도 없이
어깨너머라는 말은 그저 다가가 천천히 익히는 말
뒤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아주 닮아가는 말
따르지 않아도 마음결에 빚어지는 말
세상일이 다 어깨를 물려주고 받아들이는 일 아닌가
산이 산의 어깨너머로 새 한 마리를 넘겨주듯
꽃이 다음 올 꽃에게 자리 내어주듯
등을 내어주고 서로에게 금 긋지 않는 말
여기가 저기에게 뿌리내리는 말
이곳이 저곳에 내려앉는 가벼운 새의 말
또박또박 내리는 여름 빗방울에게 어깨를 내주듯
얼마나 글썽이는 말인가 어깨너머라는 말은
『시인동네』 201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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