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국

노모 일기․10

김욱진 2020. 10. 27. 13:10

노모 일기․10

 

 

구순 한 돌을 맞은 삼월 열사흗날,

다 어스러져가는 노구를 끌고 고향집 다녀오셨다

쓸쓸하고도 설레는 마지막 여행이셨다

각처 인연 닿은 절집 둘러보며

시방삼세 제불보살님들께도 두루 인사 고하고

대구의료원 호스피스병동으로 홀가분히 이사 오신 어머니

눈만 뜨면 바라보던 비슬산 문필봉이며

수십 년 정든 이웃 사람들 얼굴이며 택호며

달포 전만 해도 봄나물 캐러 다니던 밭둑길이며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 아래 둘러앉아 쑥떡 해 먹고

쑥덕쑥덕 이바구하던 생각 자꾸만 아른거려

양동 흙집에 데려다 달라고 조르시더니만, 이젠

링거 줄이 명줄인 줄 어렴풋 알아차리셨는지

자나 깨나 나무아미타불만 부르고 계시는데

급기야, 사월 초하룻날 새벽녘

콧속까지 고무호스가 꽂혔다

머리맡에 매달린 산소호흡기에서

쫄쫄쫄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홀연, 어머니는 반야에 드신 듯

아야, 아야……

나를 찾는 심경 줄줄 토하셨다

밤새 나는

그 염불소리에 귀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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