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국

막장에서 만난 형

김욱진 2020. 11. 8. 21:03

막장에서 만난 형

 

 

두 하늘을 모시고 사는 형이 있었다

파란 새벽하늘 쳐다보고 갱 속으로 들어가

숯검댕이 하늘나라 투명인간 되어버린 형, 만나러 갔다

늦가을 해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갑반 일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검댕이들은 다

나의 형 같아 보였다, 보릿고개 시절

온몸에 깜부기 칠하고 나를 폭삭 속여먹었던 형

엄마한테 검정 고무신 사달라고 떼쓰던 그 형아

오늘은 아무런 말이 없다

동생 공부시키겠다고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막장까지 떠밀려온 형들의 눈빛이 모도

지금, 여기, 나는 없었다

막장 한 모퉁이 꼬부리고 앉아

시시만큼 싸 온 점심 도시락을 까먹으면서도

은성 주포집 빈대떡 두루치기 한 접시 시켜놓고

술잔을 부딪치며 먼저 떠난 이의 이름 되뇌면서도

갱 입구 쓸쓸히 서 있는 동상을 바라보면서도

시커먼 석탄 가루 뒤집어쓴 형의 마음은 늘 새카맣게 타들었을 터

어렵사리 대학 간 동생 고시 패스만 하면

팔자가 늘어질 끼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형

석 달에 한 번쯤 광산 이발관 들러 밑도리도 하고

사택 공동 목욕탕에서만 항상 목간하던 형

간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은성 식육점 돼지고기 두어 근

새마을 구판장 소고기라면 대여섯 봉다리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던 형

목소리가 고대로 살아남아 있는 문경 석탄박물관

단칸방 사택에는 아직도 라면땅 사 오는 형을 기다리며

나의 조카 질녀들은 딱지치기하고 있다

연탄불 피워놓은 따듯한 방에서 내가 편히 잠들었던 그 시간

형은 월남막장에서 석탄을 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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