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인
조은길
남자에게 끌려간 아이가
사타구니가 만신창이로 찢어진 여자아이가
생피를 쏟으며 죽어가고 있는데
운문 형식 산문 형식 따지며
저 여자아이에 관한 시를 써도 괜찮을까
가난한 비정규직 청년이
안전장치도 없는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몸이 동강 나 죽었는데
원관념 보조관념 따지며
저 청년에 관한 시를 써도 괜찮을까
쇠창살에 갇힌 닭들이
손톱 발톱 부리를 빼앗긴 수많은 닭들이
밤도 낮도 없이 알을 빼다 살처분되었는데
은유법 환유법 따지며
저 닭들에 관한 시를 써도 괜찮을까
늙고 병든 사람이
자식들에게 폐 될까 봐
말없이 앓다 구더기 밥이 되었는데
비장미 숭고미 따지며
저 구더기 밥에 관한 시를 써도 괜찮을까
행 구분 연 구분 운율까지 딱딱 들어맞는
이런 시를 써도 정말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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