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그릇 / 안도현

김욱진 2021. 2. 27. 12:01

그릇

안도현

 

1

사기그릇 같은데 백 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하나 얻었다

국을 담아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

그릇은 나를 얻었다

2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버릴 수 없는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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