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나무의자

김욱진 2021. 3. 10. 22:29

나무의자

 

 

물속에 가라앉은 나무의자 하나

미라처럼

등을 바닥에 대고

못 한 모퉁이 조용히 누워있다

지나가다 언뜻 보면

평생 누군가의 엉덩이 치받들고

꼿꼿이 앉아 등받이 노릇만 하고 살다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누워

노후를 편히 쉬는 듯한 모양새다

그 자세가 부러웠던지

물오리 떼 간간이 찾아와

근심 풀듯 물갈퀴 풀어놓고 앉아

쉬, 하다 가고

그 소문 들은 물고기들도

어항 드나들듯

시시때때로 와서 쉬었다 가는데, 저 나

무의 자는 더 이상

나무도 아니고, 의자도 아니다

앉으나 누워나, 성당

못 오가는 사람들 쉼터 되어주다

못 속으로 돌아가

못 다 둘러빠지는 그 순간까지

십자가 걸머지고 가는 나

무의 자는

나무로 왔다 의자로 살다

못으로 돌아간 성자

 

-2021 대구문학 3월호

'♧...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맛나는 세상  (0) 2021.04.12
금호강변  (0) 2021.03.10
빈집  (0) 2021.03.10
암, 글쎄  (0) 2021.03.10
여시아문如是我聞  (0) 202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