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
김욱진
얼마 전 정년퇴직을 했거든요
고향 친구들 간간이 전화 와서
요즘 백수 된 기분 어떠냐고 물으면
살맛이 난다 그러지요
그래도 꼬치꼬치 물으면
진담 반 농담 반
봄 꼬치꼬치 흐드러지게 피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한참 너스레를 떨지요
아침 먹고 동네 한 바퀴 돌다 보면
개나리 목련 벚꽃 죽 나와 서서
인사하는 거 다 받아줘야지요
이름 모를 새들 날아와서
노래 부르는 거 다 들어줘야지요
멀리서 친정집처럼 찾아온 벌 나비들
가족사진 한 장씩 찍어둬야지요
눈 퀭한 길고양이들
새우깡이라도 한낱 던져줘야지요
그러고 노인정 앞 툇마루 둘러앉아
윷놀이하는 할머니들 윷말 다 써줘야지요
도 앞에 개 나온 할머니 인상이 죽을 맛인데
멍멍 짖고 지나가는 개
멍하니 쳐다보는 척하며
윷말을 은근슬쩍 윷에다 놓아버리지요
그러면 그 할머니 어깨춤 덩실덩실 추면서
막걸리 한 사발 쭉 부어주시지요
재수 좋은 이런 날
생각만 해도 배가 절로 부르지요
-2021 문경문학 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