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살맛나는 세상

김욱진 2021. 4. 12. 08:15

살맛나는 세상

김욱진

 

 

얼마 전 정년퇴직을 했거든요

고향 친구들 간간이 전화 와서

요즘 백수 된 기분 어떠냐고 물으면

살맛이 난다 그러지요

그래도 꼬치꼬치 물으면

진담 반 농담 반

봄 꼬치꼬치 흐드러지게 피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한참 너스레를 떨지요

아침 먹고 동네 한 바퀴 돌다 보면

개나리 목련 벚꽃 죽 나와 서서

인사하는 거 다 받아줘야지요

이름 모를 새들 날아와서

노래 부르는 거 다 들어줘야지요

멀리서 친정집처럼 찾아온 벌 나비들

가족사진 한 장씩 찍어둬야지요

눈 퀭한 길고양이들

새우깡이라도 한낱 던져줘야지요

그러고 노인정 앞 툇마루 둘러앉아

윷놀이하는 할머니들 윷말 다 써줘야지요

도 앞에 개 나온 할머니 인상이 죽을 맛인데

멍멍 짖고 지나가는 개

멍하니 쳐다보는 척하며

윷말을 은근슬쩍 윷에다 놓아버리지요

그러면 그 할머니 어깨춤 덩실덩실 추면서

막걸리 한 사발 쭉 부어주시지요

재수 좋은 이런 날

생각만 해도 배가 절로 부르지요

 

-2021 문경문학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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