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수상작

바이킹 / 고명재(2020조선일보 신춘문예)

김욱진 2021. 11. 24. 01:31

바이킹

고명재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버리고

네가 다가올 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뒷목을 핥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교회 십자가가 네 귀에 걸려 찢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빨갛게 물들어 일렁거렸다

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더는 바다가 두렵지 않다고

이 배는 오래됐고 안이 다 삭아버려서

더 타다가는 우리 정말 하늘로 간다고

날아가는 기러기의 등을 보면서

실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너를 보면서

눈 밑에서 해가 타는 것을 느꼈다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