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동백나무
지난겨울 어느 날 새벽
지장성지 도솔암* 법당에서
백 여덟 번 넙죽 절을 하고
무심히 외길 따라 내려오다,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우연히 눈 마주친 선운사 동백나무
대웅보전 뒤뜰에서
묵언정진 중인 저 나무들도
이곳에 뿌리내리기 전까지는
나처럼 한낱
바람기 많은 중생이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동박새라도 한 마리 날아와
입술 살몃 닿는 날이면
나무는 혓바닥 길게 내밀며
밤새 몸부림쳤을 터
머잖아, 뜬구름 둥지 부수고
세상 밖으로 걸어나와
꽃말 전할 그대들의
무심법문 듣고 싶다
*도솔암 : 고창 선운사의 귀속 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