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사계

둥지

김욱진 2010. 5. 21. 20:43

                     둥지

 

 

 

 

새장에 갇혀 살다, 해거름 녘

힘겹게 빠져 날아온 새 한 마리

산꼭대기에서

식은땀 흠뻑 젖은 날개를 펴고

둥지조차 하나 없는 도심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어느

새, 탈주범 찾아나섰나

경찰차들의 사이렌 소리 들려오고

길거리는 온통 동맥경화에 걸린 듯하다

 

아스팔트 속에 겨우 뿌리내린

나무들의 안색이 좋지 않다

날갯짓 한번 제대로 할 수 없는

나의 핏줄들은

또 어디에선가 가슴 죄며

소리 없이 울고 있을 것이다

 

이제,

야윈 나뭇가지에 쪼그리고 앉은

늦가을햇살 주워 모아

허공기둥 세우고

지푸라기 같은

별빛 몇 모금 물어와

듬성듬성 지붕 이어야 할 시간이다

 

새는

텅 빈 둥지 틀고

늘푸른 산에서,

산에서 살아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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