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늦가을 이른 아침
잔잔한 경음악이 흐르는 달성공원
출입문 지붕 위에 진을 치고
밤새 토성을 지킨 비둘기 떼
한 무더기 잔디밭으로 내려앉아
하루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듯
고개 숙이며 원을 그린다
지팡일 짚고 산책 나온 할머니
한쪽 수족을 떨며 비둘기 곁으로 다가와
손주 덥석 품어 안듯
모이 몇 줌 던져주다, 그마저 힘겨운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목발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향나무 어깻죽지만 유심히 바라본다
온갖 추억이 서린
얼룩진 벤치 위에서
하룻밤 지샌 할아버지 한 분도
서리 맞은 날개를 털듯
이부자릴 개며 또 이삿짐을 싼다
향나무 아래서
갈길 서두르고 있는 은행잎들처럼
산다는 것은
바람 따라 모였다 흩어지는 일
울고 웃고 부대끼던
어느 길 한 모퉁이서
홀로
야윈 제 모습 가만 들여다보며
숨 고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