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사계

산다는 것은

김욱진 2010. 5. 21. 20:39

              산다는 것은

 

 

 

늦가을 이른 아침

잔잔한 경음악이 흐르는 달성공원

출입문 지붕 위에 진을 치고

밤새 토성을 지킨 비둘기 떼

한 무더기 잔디밭으로 내려앉아

하루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듯

고개 숙이며 원을 그린다

 

지팡일 짚고 산책 나온 할머니

한쪽 수족을 떨며 비둘기 곁으로 다가와

손주 덥석 품어 안듯

모이 몇 줌 던져주다, 그마저 힘겨운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목발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향나무 어깻죽지만 유심히 바라본다

 

온갖 추억이 서린

얼룩진 벤치 위에서

하룻밤 지샌 할아버지 한 분도

서리 맞은 날개를 털듯

이부자릴 개며 또 이삿짐을 싼다

향나무 아래서

갈길 서두르고 있는 은행잎들처럼

 

산다는 것은

바람 따라 모였다 흩어지는 일

울고 웃고 부대끼던

어느 길 한 모퉁이서

홀로

야윈 제 모습 가만 들여다보며

숨 고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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