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사계

인연

김욱진 2010. 5. 21. 20:48

       인연

 

 

 

 

몇 해 전

때 아닌 폭설이 내린 어느 봄날 오후

학교 간 아들놈 마중 갔다 돌아오는 길에

경운기 바퀴자국 꽉 물고

떨며 누워 있는 어린 나무 한 그루 만났지

 

어디론가 실려가다

먼 산을 보았는지, 그만

미끄러져 만신창이가 된 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눈빛이었어

 

저 홀로

험한 세상 헤치며 사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성도 이름도 모르는 그 놈의 뿌리만 믿고

내 뜰 한구석을 비워주었지

 

상냥한 햇살에 기대어

졸기만 하던 그 놈은

꿈속에서

‘내가 누구냐’고 외쳐댔어

부러진 뼈마디에 피가 돌고

속살 가득 차오르는 순간까지

 

꼬박 삼 년이 지나서야

말문을 연 듯

어디선가 날아온

벌 나비 떼와 입맞춤하였어

 

올 가을엔

석류나무 마음자리 한구석에

내가 세들어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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