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르행 버스를 기다리며
정일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
울란바토르행 버스를 기다린다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다면
나는 혁명할 것이다, 조국에서
내 사랑의 시작은 신기루였고
내 사랑의 끝은 폐허였다
세계는 오래 전부터 하나인데
사랑하는 조국은 여전히 나눠져 있다
21세기의 하나뿐인 분단민족이여
나는 이 이분법이 이제는 지겹다
초원으로 가서 사랑을 하고 싶으니
쇠를 녹이는 끓는 사랑을 하고
칸이 될 수 있는 사내를 낳을 것이다
그 아이에게 내 성씨를 물려주고
네 제국을 만들라 유언할 것이다
고백하자면 반도는 사랑하기에 너무 좁다
북쪽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남쪽에서의 꿈은 꿈마다 숨이 막힌다
칸이 아니면 또 어떠랴, 딸이 태어난다면
바람이라는 뜨거운 이름을 주고
초원의 시인으로 살게 할 것이다
아시아의 처음에서 유럽의 끝까지
그녀의 시가 하나의 언어가 되는
유라시아의 시인으로 살게 할 것이다
나는 울란바토르행 버스를 기다린다
나는 몸에 꿈 하나 숨기고
남쪽과 북쪽의 국경을 넘을 것이다
국경을 넘는 것이 죄가 된다면
나를 구금하라, 대륙의 피에
반도의 피를 섞으려는 것이 유죄라면
나도 혁명가처럼 서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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