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쉰 / 정일근

김욱진 2022. 8. 14. 15:16

정일근

 

 

아침에 끓인 국이 

저녁에 다 쉬어버렸다 

냄비뚜껑을 열자 

훅하고 쉰내가 덮친다 

이 기습적인, 불가항력의 쉰내처럼 

남자의 쉰이 온다 

일상의 뒤편에서 

총구를 겨누던 시간의 게릴라가 

내 몸을 무장해제 시켜놓고 

나이를 묻는다 

이목구비 오장육부 

나와 함께 사는 어느 것 하나

나이보다 뒤처져서 

천천히 오지 않는다 

냄비에 담긴 국을 

다 쏟아버렸지만 

사라지지 않는 쉰내 

냄비를 씻고 또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쉰내 

이미 늦었다 

나의 생은 부패를 시작했다 

내 심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빠르게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