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폭우 /사윤수

김욱진 2022. 9. 25. 10:59

폭우

사윤수

 

    

비가 이 세상에 올 때

얼마나 무작정 오는지 비에게 물어볼 수 없고

모르긴 해도 빈 몸으로 오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오면서 생각하니 급했던지

다 와서는 냅다 세상의 가슴팍을 때리고 걷어차고

다그친다 무엇을 내놓으라고 저렇게 퍼붓나

내가 비의 애인을 숨긴 것도 아닌데

쏟아붓는다 들이친다

하다가 안 되니까 제 몸을 마구 패대기친다

   

어쨌든 들어오시라

나는 수문을 열고 비의 울음을 모신다

비의 물고기들이 물밀 듯 밀려들어온다

방 안 가득히 차오르는 빗소리

인사불성 표류하는 비의 구절들

 

비는 이미 만취가 되었으므로

비가 들려주는 시, 비가 부르는 노래를

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

다만, 그래 그래 알았어, 그래 괜찮아

하면서 달랜다, 비의 등을 다독인다

그새 얼마나 울었는지 비의 눈이 퉁퉁 부었다

 

밤낮을 바꾸어 추적추적 지친 음성으로 내리던

비가 차츰차츰 멎나보다

비는 멈출 때 느리고 무겁고 흐느끼는 소리를 낸다

젊은 비는 저런 구음을 낼 수 없으리라

비도 마지막엔 늙는가

죽은 저 빗소리들 내 곁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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