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의 날들
김형로
아이 다 키웠는데
숟가락 들고 먹여주는 일 또 있다
이소離巢 중 다친 딱새에게 달걀노른자를 으깨 먹였다
부러진 날개를 늘어뜨리고
새벽에 짹! 하고 어미 부르는 소리
손아귀에 쥐고 숟가락으로 떠먹였다
오늘은 할미꽃 새싹에게 뜨물을 먹였다
싹 틔운 상토에 얼마큼 먹을 게 있겠나 싶어
두 떡잎으로 서있는
어린것에게 뜨물을 차 숟가락으로 먹였다
신기하게도 숟가락 쥐고
떠먹이면
나는 고요해지고 낮아진다
옴팍하니 작은 것이 영물스럽다
나는 오늘도 숟가락으로
내 몸에게 떠먹인다
먹는 게 아니라 떠먹인다 생각하면
내 몸이 측은해진다
떠먹이는 숟가락에게
입을 벌리고 쓰윽, 숟가락을 훑는
입술이며 혀가 고맙다
모오든 쇠붙이는 가더라도*
이 야무진 것은 남아야 한다
요망진 숟가락의 신비다
*신동엽의 시 변용
(2023 사람의 문학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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