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정오의 聖所 / 강문숙

김욱진 2023. 5. 26. 22:48

정오의 聖所

강문숙

 

 

아픔 없는 인생 없다

상처 없는 삶이 없다, 나는

시의 입을 빌려 말했지

 

병도 나의 스승이었고

꽃은 저 나무의 상처라고

가만히 고개 숙여 나를 위로했지

 

가시의 나중이 장미였거나

처음부터 가시였던 장미이거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혹은, 참을 수 없이 무거운 목숨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할 때

그 간절함으로 장미가 핀다는 걸

오래된 저 담장만이 알고 있지

 

가시를 껴안았더니 장미꽃이 피었구나

울고 있는데

가시관을 쓴 그의 이마에 흐르는 피

나를 들어 올린다

 

장미를 받아 적는 저 담장에

잠언처럼 가시가 박히는

붉은 정오의 聖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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