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새의 집 / 이규리

김욱진 2023. 6. 24. 08:56

 새의 집

 이규리


 귓속에 요란하게 비가 쏟아졌다
 
 전정기관에 비가 집을 짓는다
 가재도구가 흔들리고
 
 새가 둥지를 틀었나 불빛이 들여다본다
 
 어지러울 수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그렇다고 웃음을 거두라는 말은 아니라고도 했다
 
 뭐, 너무 반듯이 걸으려고 하지 마세요
 벽을 의지하고 걷다 보면 벽을 이해하지 않을까요
 
 비유법을 쓰는 의사를 신뢰하기로 하면서
 벽을 믿어보았다 내가 밀렸다
 
 천장에 동그라미들이 흩어지고 모이고 사라지는 동안
 
 회전목마가 돌고
 아버지는 오지 않고
 치마가 짧아지고 있었다
 
 여기가 우듬지구나
 우듬지는 새의 집이구나
 만질 수 없는 소리들이 가득 들어있구나
 
 고개를 돌릴 때마다 특히 어지러웠는데 
 눈보라가 날리고 그때
 아주 잠깐 피안이 있었고 
 눈이 베이고 
 
 황홀이야
 
 그게 내가 낫기를 바라지 않는 이유였다
 
 나는 새의 집을 더 지어야 하니까
 무용한 소리를 모아야 하니까
 
 전정에서 전생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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