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한두레 마을 염소 이야기

김욱진 2023. 10. 25. 13:23

한두레 마을 염소 이야기

김욱진

 

초등학교 때 나는 염소 동아리 반장을 한 적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근로 장학생인 셈이다

가정 형편 어려운 나는

장학금 턱으로 어린 암염소 한 마리를 받았다

소 키우는 집이 엄청 부러웠던 그 시절

학교만 갔다 오면

나는 염소 고삐 잡고 졸졸 따라다니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 염소가 자라 이듬해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그 중 수놈은 팔아 중학교 입학금 마련하고

암놈은 건넛집 할머니랑 사는 여자아이에게 분양했다

희망 사다리 오른 그 아이도

어미 염소 되도록 길러 새끼 낳으면

릴레이식으로 건네주는 염소 동아리

염소 한 마리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 낳고 낳아

육십여 호 되는 한두레 마을은 

어느새 염소 한 마리 없는 집이 없었다 

뿔 맞대고 티격태격하던 이웃들

염소 교배시킨 인연으로 부부 되고 사돈 맺는

고삐 풀린 그런 날 더러 있었는데

외박 나온 염소들도 마냥

하늘땅 치받으며 히죽히죽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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