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레 마을 염소 이야기
김욱진
초등학교 때 나는 염소 동아리 반장을 한 적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근로 장학생인 셈이다
가정 형편 어려운 나는
장학금 턱으로 어린 암염소 한 마리를 받았다
소 키우는 집이 엄청 부러웠던 그 시절
학교만 갔다 오면
나는 염소 고삐 잡고 졸졸 따라다니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 염소가 자라 이듬해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그 중 수놈은 팔아 중학교 입학금 마련하고
암놈은 건넛집 할머니랑 사는 여자아이에게 분양했다
희망 사다리 오른 그 아이도
어미 염소 되도록 길러 새끼 낳으면
릴레이식으로 건네주는 염소 동아리
염소 한 마리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 낳고 낳아
육십여 호 되는 한두레 마을은
어느새 염소 한 마리 없는 집이 없었다
뿔 맞대고 티격태격하던 이웃들
염소 교배시킨 인연으로 부부 되고 사돈 맺는
고삐 풀린 그런 날 더러 있었는데
외박 나온 염소들도 마냥
하늘땅 치받으며 히죽히죽 웃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