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힘은 내일을 비추는 오늘-순암을 읽다
김은숙
세상은 늘 원본이자 진본이라서
훗날이 반드시 고증해 온다
남는 건 기록이고 기록은 길이라서
정사(政事)를 버리고 정사(正史)만을 저록한다
사람의 심연을 다스리는 성현의 도는 저택과 같다
공리공론에 빠지지 않으려
선입견 버리고 붓을 드는 순간
갓을 고쳐 쓴 아집은
돌담 밖에서도 기웃거리지 못한다
실체가 끊어지면 정처 없이 걷고
실체가 보이면 한 달 내내 서고에 틀어박혀
혜안을 넓힌다
스무 권을 완성하는 동안
벼루는 움푹 패고
열 번째로 닳은 붓이 편년을 헤아린다
그러니 역사를 쓴 것은 내가 아니라
역사가 나를 집필한 것이다
잠시 흩어진 중심을 하나로 모아
머리말을 적지 않고
퇴고로 쓴 시간만큼 거슬러간다
밖을 보니 문득 새벽이다
미간을 명징하게 지켜보는 달이
부록처럼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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