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을 굽다
사윤수
베어낸 굴참나무를 수레에 실어왔다
둥치가 튼실한 걸 보니 하늘을 이고 자랐겠구나
우듬지에 따라온 두 평 반 구름이 높이 떠가고
가지마다 앉았던 새소리가 흩어졌다
참나무는 빈 몸이 되었다
세월을 자르고 바람을 토막 내고
잔가지와 잎은 불쏘시개로 쓸 테니 버릴 것이 없다
궁핍도 때로는 쓸모 있는 시절인 것을,
너를 구워 나를 익게 하리라
숯가마를 가득 채운 직립의 참나무에 불을 지핀다
세월이 타고 고뇌가 타고 나무의 기억들이 춤춘다
이레 여드레 꺼지지 않는 불꽃 속에서
나무는 죽고 또 죽어야 숯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므로
나는 오로지 맑고 희거나 검게 빛나는 덩이를 얻고자 했으므로
한 때 숯을 굽는 일은 나의 실학이 되었다
숯이 된 굴참나무는 탈 때 연기가 나지 않고 오래 탄다
너를 팔아 나는 다시 학문을 벌고 사기史記를 이어갔으니,
강목綱目의 산등성이에 가을 구름 푸르게 흐른다
어디선가 맑은 새소리 쉬지 않고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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