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둥근 세모꼴 외 2편/유안진

김욱진 2011. 6. 21. 15:16

둥근 세모꼴 (외 2편)

 

   유안진

 

 

 

비트겐슈타인만큼 펄펄 끓는 정오

켄터키 프라이드 인간이 되는 중이다

메밀베개 베고 엎어졌다 일어났다

시원해질까 하고

메밀꽃 메밀꽃 하는데

이효석의 메밀밭이 제 발로 달려온다

까만 세모꼴 속에 시침 떼고 들어앉은

동그랗고 하얀 알갱이까지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나물까지 군침 돌더니

이마머리 자욱 핀 메밀꽃밭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가 뛰어온다

삼복 여름-메밀밭.

 

 

 

가을타고 싶어라

 

 

 

벤치에 낙엽 두 장

열이레 달처럼 삐뚜름 멀찍이 앉아

젖었다 말라 가는 마지막 향기를 나누고 있다

 

가을 타는 남자와 그렇게 앉아

달빛에 젖은 옷이 별빛에 마를 때까지

사랑이나 행복과는 가당찮고 아득한

남북통일이나 세계평화 환경재앙이나 핼리혜성을

까닭 모를 기쁨으로 진지하게 들으며

대책 없이 만족하며

그것이 고백이라고 믿어 의심 없이

그렇게 오묘하게 그렇게 감미롭게.

 

 

 

무어라고 썼을까

 

 

 

간음 현장의 여인을 끌고 와 물었다

율법대로 돌로 치리이까?

말없이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쓰고

일어선 예수는, 죄 없는 이부터 먼저 치라

고 하며, 다시 땅바닥에 썼다

1. 대단하지 않소, 혼자서도 간음할 수 있다니?

2. 같이 잔 남자는 왜 안 끌고 왔소?

3. 당신들은 재수 좋아 안 들켰을 거 아니요?

4. 당신들 딸이라면 어떻게 하겠소?

몇 번이 정답이었으면 좋겠습니까?

 

 

 

                             —시집 『둥근 세모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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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1967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 첫 시집 『달하』를 비롯하여 『누이』,『다보탑을 줍다』,『거짓말로 참말하기』,『알고(考)』, 『둥근 세모꼴』등 시집 15권.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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