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예현연
나는 난폭한 어둠을 알아
ㅡ 어둠이 때때로 나를 밟고 가나보다
불을 켜 보면 나도 모르게 멍이 들어 있다
흩어진 거울
조각조각마다 나를 노려보는
어둠의 충혈된 눈동자
나는 인간의 목소리가 싫어
어둠은 온종일 내 머릿속에서 노래를 불러대지
이를 악물고 귀를 막아도 새어나오는 노래
잊혀진 노래의 리듬에 맞추어
저 멀리서 녹슨 철문이 끼익끼익 열렸다 닫혔다 하네
잠들지 못한 밤의 도시엔선
끊임없이 하수구로 물이 콸콸 흘러가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지나가는 행인과
바람에 펄럭이다 찌익 찢어지는 현수막
ㅡ 지금 인간의 형태로 덩어리진 어둠이 나의 침대에 웅크리고 있다
나는 번뜩이는 이빨 드러낸 어둠을 보고 있어
온몸의 털을 하나하나 곤두세우고
낮게 으르렁거리며 미소 짓는,
저 어둠의 이름
—《다층》201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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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현연 / 1978년 경남 진주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같은 과 대학원 졸업. 200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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